[오마이뉴스 한림랩 뉴스룸] "한때 세계를 이끌었지만..." 한국 이스포츠의 오늘
  • 등록일 :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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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를 이끌었지만..." 한국 이스포츠의 오늘

상금 규모 줄고 구단 매출도 줄고… 선수들 고용 환경 '불안'


국내 이스포츠 시장 규모가 해마다 성장하고 있지만 정작 게임 구단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고 선수들도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존재하긴 하지만, 해외 사례와 비교해 봤을 때 세계 이스포츠붐을 주도했던 나라라는 위상이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4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 2023년 치러진 대회의 상금 규모는 전년 대비 12.2% 감소했고, 중계권·광고·티켓 수입을 합친 종목사 매출도 6.5% 감소했다.

이런 전체 산업 매출 감소는 구단별 상황에서도 감지된다. 잡코리아의 기업 재무분석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혁 선수가 소속된 'T1'은 2023년 120억여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88억여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나아진 모습이지만, 예산 규모가 늘어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백서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산업 규모는 전년 대비 7.8% 상승했다. 게임단 예산도 1115억여 만 원으로 15.8%나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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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3년 이스포츠 산업 규모 세부 현황.산업규모는 증가했으나 상금과 종목사, 데이터 플랫폼 매출의 감소세를 볼 수 있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시장 규모는 커져도 구단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 등 관계자들은 어떤 생각일까. 젠지 글로벌 아카데미에서 프로지망생으로 활동하는 신아무개(18)군은 "젠지와 같은 대형팀은 연봉 체계도 잘 잡혀있고 스폰서도 많아 큰 걱정이 없겠지만, 작은 팀은 인지도도 낮고 지원이 부족해 언제 계약이 끊길지 모른다"고 전했다.


마루 게이밍 아카데미에서 프로 지망생을 지도하는 인태훈 코치는 과거 선수 생활 후 코치의 길을 선택한 사례. 인 코치는 "유명팀 몇 곳을 빼곤 대부분 팀이 쉽게 사라지는 상황이 흔하다"며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버려지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국 이스포츠가 겉으로는 위용을 과시하는 듯하지만 정작 선수와 관계자에게 안정적인 이스포츠 활동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정황은 통계 수치로도 포착이 된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나온 <2024 이스포츠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정황은 포착이 된다. 코칭스태프들의 애로사항에는 고용불안정과 체계적인 시스템의 부재, 지원 정책의 부족이 상위권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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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이스포츠 실태조사> 코칭스태프 애로사항 TOP5.코칭스태프들의 애로사항에는 고용불안정과 체계적인 시스템의 부재, 지원 정책의 부족이 상위권에 올랐다. ⓒ 한국콘텐츠진흥원


인 코치의 말처럼 중소 규모 팀은 사라지거나 바뀌는 경우가 잦다. 2022년 창단해 2024년 해체된 '비욘드 스트라토스 게이밍', 2021년 재정난으로 모든 팀을 정리한 '이스탯츠 이스포츠', 2018년 창단해 여러 우승을 거둔 뒤 올해 1월 해체된 '다나와 어택 제로'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많은 팀이 사라지거나 큰 변화를 겪는 가운데, 국내 e스포츠 환경 개선을 위한 변화가 요구된다.

이에 대해, 신군과 인 코치는 해외 사례가 눈여겨 볼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태 조사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이스포츠는 국가 차원의 지원에 힘입어 지속적인 발전이 예상된다고 한다.

이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은 해외 매체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022년 항저우가 연간 1400만 달러의 기금을 관련 분야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지에 게재된 바 있다. 또, 이스포츠 전문 매체 < The Esports Advocate >에 따르면 선전시는 2023년 이스포츠 전용 경기장 건설을 위해 139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또 지난해 국제표준기구에 '게임·이스포츠 용어 표준화' 제안서를 제출하며 산업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21년 '비전 2030'을 발표하며 '국가 게임 및 이스포츠 전략'을 함께 발표했던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오는 2030년까지 사우디를 게임 및 이스포츠의 글로벌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게임 산업 투자를 위해 세계 유명 게임사들의 지분을 1조 원 상당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고, 2023년과 2024년에는 '이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도 지원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5월부터 대한민국 이스포츠 리그(KEL)를 출범시켜 지역연고제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또 문체부는 지난 9월 5일 2026년 예산안을 공개했는데, 이중 게임 육성 예산에서 이스포츠 활성화 부문으로 올해보다 약 30%를 늘려 103억 원이 배정됐다. 또한 게임·이스포츠 진흥 정책을 담은 보고서를 통해 향후 5년간 27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지원에는 충남 아산 이스포츠 경기장 신설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이스포츠 리그는 이제 막 출범, 그 영향력이 미미하고 투자 역시 이스포츠에 대한 한국의 위상과 세계적 흐름에 비교했을 때 뒤늦은 감이 있다. 게다가 콘텐츠진흥원이 2024년 발간한 'e스포츠 사업 성과분석 및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18년부터 5년간 약 300억 원의 국고를 이스포츠 산업에 투입했지만 여전히 일반인이 체감할 수 있는 단계에 들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프로지망생 신군은 "중국은 지방 정부가 대회를 직접 지원하고 경기장을 건설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 정책으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며 "한국 정부도 직접 나서서 제도와 사회적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인 코치는 "구단과 선수들이 다른 스포츠 선수들처럼 스포츠맨십을 길러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이를 기반으로 더 활발한 투자를 이끌어 내야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여전히 남아 있는 불법 베팅이나 승부조작, 계정 대리와 같은 부정행위 관행도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또, "사우디 왕가와 같은 해외 자본이 많은 지원을 풀고 있으니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며 외부 자본을 통한 돌파구 마련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중국과 사우디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는 사이, 한국은 여전히 지원에서 뒤처져 있다. 산업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기보다, 선수와 구단이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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